서론
심신이 지치는 날이 있다. 이유가 딱히 분명한 건 아니지만 괜히 몸이 무겁고 짜증의 역치가 낮은 상태를 말한다. 지난 토요일도 그러했다. 비가 오느라 어둑해진 밖이 원치 않은 늦잠을 자게 했고, 해야할 집안일을 보고 귀차니즘이 솟아 올랐다. 머리는 그러지 않았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수차례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다보니 점심 먹을 때였다. 한창 식단과 내과 검사 수치 관련해 신경을 써오던 터라 아내와 나는 늘 음식을 고를 때 따지는 것이 많다. 그건 밀가루, 그건 너무 헤비해, 좀 상큼한걸로 등등. 말 없이 듣고 그저 호응만 하던 나는 불현듯 내 명치 언저리에 자리한 짜증과 한주의 억울함을 풀어낼 음식이 먹고 싶었다.
"오늘은 짬뽕 먹고 싶어."
내 얼굴을 보고 한 마디 쏘아 붙이려던 아내 입술에서 선뜻 "그래" 라는 말이 나왔다. 그 뒤에 "가게 좀 찾아봐"가 안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쉽사리 결제가 나지 않는 메뉴라 나는 황급히 네이버 지도를 켜서 동네 모든 중국집의 별점과 리뷰를 확인했다. 그리고 발견한 한 가게. 종종 갔던 재래시장 안에서 스쳐가듯 본 그 집. 한 번은 와바야겠다라며 다음을 기약만 했던 그 집. 우리는 그 집으로 향했다.
본론

매장에 앉기까지 약 20분 걸렸다. 비가 오는 토요일 점심이라 오래된 시장 주차장 자리가 걱정 됐다. 서둘러 와서 그런지 운이 좋게도 입구쪽 자리에 바로 주차할 수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라 근거 없는 시그널인가 싶어 약간 흥분 됐다. 괜시리 짬뽕이 더 맛있을것 처럼. 매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실내 인테리어와 메뉴판의 형태, 놓여있는 식기류와 양념통들이 이 집의 연차와 바이브를 넘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짜장 2, 짬뽕 1. 주문하고 의례 나왔어야할 시간이 지나서 주방 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종업원 이모님은 나와 주방을 번갈아 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곧 나와요.'
난 음식의 취향이 매우 확고하며 조건이 까다롭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 더욱 그렇다. 난 지금 대부분의 짬뽕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근거 없이 풍기는 불맛, 이를 구현하겠다며 어이 없이 태운 양파 덩어리, 근본 없는 당근과 애호박, 이유를 모르겠는 숙주까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어느 하나 짬뽕의 맛을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명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지도 말아야 하며 결정적으로 홍합 껍질 벗기느라 면이 불고 다 빼내면 국물 양이 반으로 주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모름지기 짬뽕이라면 너무 맑지도 너무 탁하지도 않은 다홍색 국물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면, 그 위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올라간 채소와 해물 고명이 면과 6:4정도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적어도 나한테는. 이유 없이 올라간 재료는 없어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짬뽕이 그러했다. 아이와 아내의 짜장면을 버무려 주는 동안 먼저 짬뽕 맛을 본 아내의 미간이 단숨에 쭈그러들었다. 눈동자가 커지고 면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육수 맛을 봤다. 적당한 맵기와 염도로 이뤄진 육수가 혀 양쪽 뿌리와 어금니 사이로 가파르게 들어가면서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내 머릿속에 맛집 측정기 바늘이 주욱주욱 올라갔다. 면을 들어 보니 수타면이다. 주방쪽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둔탁한 소리가 수타 소리였던 것이다. 손칼국수와는 다르게 균일한 형태다. 얇은 편에 속하는 면은 육수의 맛을 적절히 머금고 있었다. 꽃살처럼 칼집낸 오징어가 둥글게 말려 있고 오징어 다리도 심심치 않게 걸렸다. 날 열받게 하는 숙주와 성의 없는 당근은 보이지 않았다.
짬뽕 한 그릇으로 내 며칠간의 마음 고생이 어느 정도 치유됐다. 아내도 흡족하게 먹는 모습이 더욱 그러했다. "당분간 중국집은 여기다." 이런 평가가 나왔다는건 매우 성공적이란 뜻이다. 긴 시간 헤어졌던 짬뽕 맛을 다시 만나 기쁜 마음 위에 아내와 아이가 맛있게 먹는 집을 찾았다는 뿌듯함이 더 효과가 좋은 약이었다. 시장을 나서는 길에 아내가 먼저 디저트 타임을 제안했다. 못이기는 척 고른 시장빵집의 맘모스빵과 떡집의 절편으로 우리 가족의 환자식은 마무리 됐다.
결론
누군가 그랬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너무 오래 됐고 너무 진부한 저 표현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들게 된다. 맛있으면 됐지, 내일 더 뛰면 돼, 저녁엔 샐러드 먹자, 와 같은 얄팍한 말로 지금을 용서하지만 결국 이런 순간이 사는 재미인가 싶다. 거창한 이유나 의미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은 어쩔 수 없이 찬양하게 된다. 덕분에 몸무게는 더 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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